온 세상을 자글자글 끓이던 폭염을 식혀주는 단비가 옵니다.

책상에 앉아서 창밖에 내리는 비를 바라보니 내 마음도 촉촉하게 젖어옵니다.

유리창에 빗방울이 부딪쳐 주르륵 흐르는 광경은 암만 봐도 지루하지 않습니다.

마치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 같습니다.

 

올여름은 참으로 덥고도 지루했습니다.

밤이 되어도 식을 줄 모르는 야속한 더위 때문에 쉽사리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불볕더위를 용케 견디고 이렇게 살아남았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하여 감격하고 있습니다.

아마 비가 내려 조금 살만해 진 덕분인가 봅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갑작스런 지인의 부고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어제, 별로 아픈 데도 없던 육십도 채 안 된 여자가 훌쩍 돌아갔다는 소식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바람에 막연히 멀게만 느끼던 죽음이 결코 멀리 있지 않음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그녀는 남편과 함께 미국에 사는 딸을 보러 갔습니다.

모처럼 가족여행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잘 보냈습니다.

그런데 귀국을 이틀 앞두고 그녀가 심장마비로 쓰러졌습니다.

같이 있던 가족들도 눈치 채지 못하게 욕조에 몸을 담근 채로 먼 길을 떠났습니다.

평소 혈압이 조금 높기는 했지만 딱히 아픈 곳은 없었기에 더욱 황망한 이별이었습니다.


그녀는 넉넉지 않은 형편에도 외동딸을 미국에 있는 중학교로 조기유학 보냈습니다.

예정보다 길어진 유학 뒷바라지에 살림이 쪼들려 점점 딸을 보러 가기가 힘들어졌습니다.

더욱이 최근엔 이러저러한 이유로 몇 년 동안 서로 만나지 못하고 전화통화만 하고 지냈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딸이 취업과정 중에 비자문제가 엉켜서 졸지에 불법체류자신분이 되었고,

섣불리 미국 땅을 나섰다간 제자리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마침 올해 남편이 정년퇴직을 해서 모처럼 부부가 함께 떠날 수 있었습니다.

비행기 표를 미리 끊어 놓고,

그녀는 떠날 날을 손가락으로 꼽으며 마냥 부풀었습니다.

앞으로는 자기 맘대로 자유롭게 훨훨 날아다닐 거라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소망은 딸이 사는 뉴저지의 자그마한 아파트 화장실에서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내가 처음 계족산을 찾아간 것은 뇌동맥 꽈리가 의심되어 정밀검사를 받고,

연이어 반측성안면경련증 수술까지 받느라 휴직하던 때였습니다.

만약 꽈리라면 아무 때나 즉사할 수 있다는 의사 말에 놀랐고,

검사 결과 꽈리가 아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귀 뒤의 머리카락을 박박 밀고 두개골에 구멍을 내서 뇌신경수술을 받았는데,

유방암 수술할 때보다 훨씬 더 무서웠습니다.

퇴원하고 나서도 한참동안 몸을 추스르지 못하고 헤맸습니다.

그래서 나는 재활병원에 입원하는 셈치고 계족산을 살살 걷기로 작정했습니다.

황토가 깔린 계족산 둘레길은 돌멩이 하나 없이 판판하고 완만하여

맨발로 뛰어도 좋은 길로 유명했기 때문입니다.


매일 조금씩 꾸준히 걸으니,

오르막길에서도 숨차지 않게 되었습니다.

다리에도 부쩍 힘이 붙었습니다.

걷다 보면 깊은 속내도 거리낌 없이 술술 털어놓게 되었습니다.

네 시간 남짓 걸리는 그 길을 걸으며

아주 오래 묵은 미움과 상처, 분노, 서러움, 콤플렉스 등을 다 풀어놓았습니다.

차가운 수술침대에 누워서 느꼈던 막연한 절망감과 두려움까지도 모조리 다 퍼냈습니다.

그리고 그 지독한 무더위마저도 계족산 나무 그늘에 기대어 견뎠습니다.


14.5Km의 원으로 된 그 황톳길은 지루할 새가 없는 명품 산책로입니다.

구불구불 이어지는 숲속 오솔길이 어떻게 끝나는지 궁금해서 한번은 꼭 완주하게 되는 길입니다.

소리 없이 살살 다가와 눈 마주치면 쪼르르 도망가는 다람쥐와도 친구가 되는 길입니다.

나는 특히 진솔한 이야기가 저절로 나오는 그 길의 안정된 분위기를 사랑합니다.

튼실한 나무들이 의장대 사열하듯 정중히 맞아주는 것도 좋았고,

여름에만 만나는 이름 모를 새들과 풀벌레들의 합창소리는 풍성한 영화음악 같아서 행복했습니다.

특히 초입에 있는 황톳길에다 물을 듬뿍 뿌려 만든 쫀득하고 매끈한 흙 반죽이 일품이었습니다.

거기를 맨발로 걸을 때 느껴지던 그 시원한 촉감은 계족산에서만 누릴 수 있는 특별한 호사였습니다.


문득, 뱃속에서 나온 분뇨만 거름이 되는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듭니다.

사람 입으로 뱉어버린 많은 생각과 감정들도 나무에겐 좋은 비료가 되는 것 같습니다.

나쁜 공기를 정화하여 산소를 뿜어내는 것처럼,

나무는 사람들 속에서 끄집어낸 묵은 감정찌꺼기들을 가지고 생명의 기운을 만드는 모양입니다.

숲길을 걸으면 몸과 마음이 두루 건강해지니 말입니다.

 


딸을 만날 기쁨에 들떠서 떠났던 그녀는 유골함 속의 가루가 되어 남편 손에 들려서 돌아왔습니다.

누구도 그녀의 삶이 이렇게 기습적으로 후다닥 끝날 줄 몰랐습니다.

이승과 저승에다 한발씩 간신히 걸친 채 오래 버티는 사람도 있는데,

그녀는 왜 그렇게 서둘러 다 놓아버리고 떠났는지 모르겠습니다.

아직 너무 예쁘고 젊은 그녀의 죽음이 참으로 안타깝지만,

인명은 재천이니 어찌하겠습니까.


따지고 보면,

남은 자들의 슬픔과 황망함은 결코 죽은 사람 소관이 아닙니다.

어쩌면 그녀는 죽는 복을 아주 잘 타고난 사람이었는지 모릅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여한 없이 잘 놀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고,

고통스러운 과정 없이 순식간에 마무리를 했으니까요.



일 년 이상 꾸준히 걸은 결과,

나는 체력과 생기를 많이 되찾았습니다.

완치를 장담할 수 없다던 주치의가 놀랄 만큼 안면경련수술도 아무 후유증 없이 잘 회복되었습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아주 자연스럽게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뿐만 아니라 몇 년 동안 병치레하느라 쪼그라들었던 마음까지 활짝 펴지고,

비워지고,

채워졌습니다.

이 모든 것이 다 계족산, 그 아름다운 길과 나무들 덕분입니다.


이 비가 조금만 수굿해지면,

촉촉하고 고즈넉한 그 길을 다시 걸으러가야겠습니다.

 

 

 

 

김 희재 : 계간 수필 천료 (1998).

계수회, 수필문우회, 한국문협, 국제PEN 회원.

미국 플로리다 탈라하시 한글학교 교장 역임

저서, 산문집 <죽변 기행> 외 공동 수필집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