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6월 걷기 모임

-날짜: 19년 6월 11일    10시 20분

-장소: 1호선 시청역 덕수궁 대한문 앞

-준비물: 모자, 양산, 선글라스, 물, 만원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덕수궁을 걸었다. 

옥규가 미리 예약을 하여 우리는 학구열에 불타는 눈빛으로 해설사의 이야기에 빨려들었다.


덕수궁은 본래 월산대군의 후손을 비롯한 황족과 고관들의 저택이 있었던 곳으로 

임진왜란으로 서울의 모든 궁궐이 소실되자

선조가 임시로 거처하는 행궁으로 사용하다가

광해군 재위시절인 1611년 창덕궁으로 어가가 옮겨가면서

별궁(경운궁)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1897년 고종이 황제로 즉위하면서 경운궁은 대한제국의 으뜸 궁궐이 되었으나

순종이 창덕궁에서 생활하시고 업무를 보셨으므로

이곳은 고종이 계신 궁궐로 고종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의미의

'덕수궁(德壽宮)'이라는 궁호로 불리게 되어 오늘에 이르렀다한다.

고종 승하 후 점령국이었던 일본은

일부 대지를 매각하고 전각을 철거한 후 공원으로 조성하여

현재는 중화전과 정관헌, 석조전 등 일부만 남아 있는 상태라고 한다.

해설사는 이 곳을 둘러 볼 때

대지는 지금의 3배, 전각 수는 10 배 였음을 기억하고

상상 속에 그 날의 역사를 따라가보자 한다.


대한문

금천교 (다리 밑 맑은 물에 모든 것 씻어내고 신성한 곳으로 들어옴 상징) 3도는 중화문 까지 연결 됐었다 한다.

중화전, 

석조전은 고종 때 근대화식 건물로 지어지고 

그 옆 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석조건물은 일본이 지었다고 한다.

준명당은 고종 편전으로 사용하기도 했는데

덕혜옹주의 유치원으로 사용허기도 했다한다.

즉조당,

석어당(단청 없음)은  목조2층 건물로 선조가 16년 머물렀는데

그 때의 국난극복과 어려움을 기억하며  단청을 하지 않았다 한다. 

살구나무 꽃필 때 꼭 다시 오라 한다.

10년 유패 생활 (인목대비) 했던 곳 임해군, 영창대군의 아픈 역사가 함께 했던 곳...

정관헌은 휴식을 위한 건물로 1900년 경 러시아 건축가가 설계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한국과 서양의 건축양식이 혼합되어 나무로 된 베란다와 기둥 위에는

소나무, 용, 박쥐, 꽃병 등 전통문양이 보인다.

고종이 커피를 마시면서 외교 사절들과 연회와 담소를 하던

이 곳이 오늘날엔 금요일 7시 매주 음악회가 열리고 있단다.

함실아궁은 온돌과 공기 덥히는 순환방식을 같이 사용했다한다.

함녕전은 고종이 거처하던 침전으로 1904년 화재로 소실된 것을 재건한 곳이라 한다.


역사의 현장을 돌아보며 백년 동안의 역사가 파란만장 했음을 실감하며

백년 후의 우리의 미래는 또 어떻게 전개 될 것인가 생각하니 

이 순간이 참으로 숭고한 시간임을 느끼게 된다.


우리는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리는

 ‘근대미술가의 재발견1 절필시대’ 전시를 둘러보았다.

이번 전시는 채색화가 정찬영과 백윤문, 월북화가 정종여, 임군홍, 이규상, 정규

총 6명 작가의 작품 134점이 전시되었다.

파격적 형식의 근대 괘불 ‘의곡사 괘불도’는 박물관, 미술관 최초로 전시 되었다는데

들어서는 곳에서 온화한 미소로 우리를 맞아 주었다.

마치 ‘괜찮아, 함께 하고 있어. 염려하지마.’ 하는 듯 했다.


미술관을 둘러보고 근처에서 점심을 먹고(순두부를 먹었는데 외국여행 할때 더 생각이 났다는 이야기들을 함) 근처 공원에서 둘러앉아 차를 마셨다.

어느새 우리는 어느 곳에 있던 함께 한다는 그 자체가 즐거움이고 삶의 의미가 된다. 


정동교회를 지나 아관파천 길, 러시아대사관 모습도 바라보고 서울시립미술관으로 향했다.

상설 전시 천경자전도 둘러보고

데이비드 호크니 전 안내 앞에서 사진도 찍었다.


정동길을 걸어 성공회 대성당을 보거나

시네큐브에서 ‘로켓맨’ 을 보는 팀으로 나뉘어

다음 모임을 기약하며 걷기모임의 막을 내렸다.


언제든  소리없이 즐겁고 행복한 맘으로 함께하는 친구들과

함께하지 못해도 마음은 먼저 가 있는 친구들을 생각하며 만남은 깊어만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