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하일기 읽고서

 

아침에 독서후기 쓰기 위해 엄니 주간보호센터 가기 전 도서관 컴 자리 예약하러 갔었단다.

내 컴퓨터엔 한글이 없어서 부득불 도서관 컴을 이용하는데 10시에 오면 빈자리가 없거든.

근데 웬일이라니? 개관 전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는데 그 중 절반이 할배들이네. 줄이 엄청 길어. 아침이면 도서관을 찾는 할아버지들이 이렇게나 많았다니....좋은 현상인데 왜 쓸쓸한 마음이 드는걸까?

왜 이런 마음이 드는지 생각해 봐야겠다.

 

2년 전 정독도서관에서 이덕무가 쓴 <책만 읽는 바보>로 독서토론을 한 것 기억나니?

 

그 때 난 연암그룹의 우정과 사는 방식이 너무 부러웠어. 그 중심에 위치한 박지원이라는 분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어 고미숙씨가 지은 열하일기 삶과 문명의 눈부신 비전.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이란 두 권의 책을 읽었던 기억이 있다.

 

사실 열하일기는 많이 알기는 해도 선뜻 읽게 되는 책은 아니라 4월 고전을 읽자는 제안과 함께 열하일기를 추천받았을 때 개인적으로 기뻤다.


이번엔 온전한 열하일기를 읽고자 김혈조가 옮긴 열하일기(돌베게 출판) 3권을 읽었다.

 

나처럼 고미숙의 열하일기를 먼저 읽고 열하일기 원본을 읽으니 이해에 도움이 되더라는 친구도 있고, 반면 고미숙의 열하일기는 작가 개인의 의견이 너무 강해 고미숙 방식으로 열하일기를 읽게 되니 또 다른 방식의 편견을 갖는 것 아닐까 하는 의문을 느꼈다는 친구도 있었다

다들 이 글이 많이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열하일기는 1780년 청나라 건륭제의 만수절 축하사절단에 자제군관의 일원으로 참가한 연암 박지원선생의 중국여행기다.

5월에 길을 떠나 6월에 압록강을 건넜으며, 8월 북경에 들어갔고 곧 이어 열하로 갔다가 그 달에 다시 북경으로 돌아와 10월에 귀국하게 되는 약 6개월간의 과정을 일기와 견문의 내용을 주제별로 독립된 글 형식으로 썼다 


연암은 중국에서 돌아와 약 3년이라는 시간을 들여 열하일기를 펴냈고 이 책은 당시에 뜨거운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고 한다. (정조의 문체반정)

 

여행기라고는 하나 이 책에는 정치, 경제, 역사, 지리, 사회, 철학, 과학, 음악, 의학 등 온갖 분야 내용들이 다 언급되니 따라 읽기가 버거웠다. 뭐 이리 아는 게 많담?


열하일기는 연암이라는 걸출한 인물이 있었기에 오직 그라서 쓸 수 있었던 책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연암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생각해 보기로 했다.

 

우선 이 분의 호기심과 관찰력은 끝이 없다.


가는 길에 마주치는 무수한 것들에 대한 묘사가 어찌나 세세하던지 때론 지루한 느낌마저 든다. 잠시 스친 인물의 생김새와 입성을 찰나에 분석하는 그에겐 경이로움마저 든다.

대충이나 대강도 없다 궁금한 것은 살펴서 그 이치를 알아내야 직성이 풀린다.

특히 수레와 기와, 벽돌, 온돌에 대한 관찰과 견해는 마치 그가 실제 이 일을 해 본 사람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구체적이고 세밀하다.

마주치는 모든 것이 호기심과 탐구의 대상이 되고 사유를 통해 또 다른 깨달음으로 변환되는 것이 놀라웠다.

 

한 친구에 의하면 그가 여행에 합류한 애초의 목적이 기록을 위함이었으니 기록을 위해선 관찰을 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 하기도 하고 어떤 친구는 보다 더 많이 자세히 보려하는 모습이 자신의 여행스타일과 닮았다고 느끼기도 했단다.

 

나는 연암의 끊임없이 사유하는 태도를 본받고 싶다.


때론 자기 생각에 빠져 일행과 뒤처지는 바람에 길을 잃어 고생하는 낭패를 겪기도 하고 한 생각에서 다른 생각으로 이어지는 글이 이 글을 읽는 나를 지치게 하는 부분도 있지만 말이다.


개인적으로 깊이 와 닿았던 부분 중 하나는 일야구도하기

열하일기에는 유달리 불어난 강을 건너는 모험이 자주 등장한다

일정에 쫓기다 보니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어쩔 수 없이 건너야 하는 정황과 사람들의 심정이 실감나게 잘 표현되어 있다.

한 번은 밤중에 우레 같은 소리를 내며 흐르는 강을 무려 9번이나 건너야 했다.

낮에는 급물살을 눈으로 보는 것이 무서워 보지 않으려는 것에만 신경이 쓰였는데 밤중에 강을 건너려니 눈으로 볼 수 없는 위험이 오로지 듣는 데로만 쏠려 귀가 무서워 부들부들 떨면서 불안과 걱정이 엄습한다. 또 밤에는 모든 소리가 과장되게 커지기도 하고....

 

내 이제야 도를 알았도다! 명심(깊고 지극한 마음)이 있는 사람은 귀와 눈이 마음의 누가 되지 않고 귀와 눈만을 믿는 자는 보고 듣는 것이 더욱 잦달아져서 병이 된다. (중략) 한번 떨어지면 강물이다. 그땐 물을 땅이라 생각하고 물을 옷이라 생각하고 물을 내 몸이라 생각하고 물을 내 마음이라 생각하리라. 그렇게 한 번 떨어질 각오를 하자 마침내 내 귀에는 강물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무릇 아홉 번이나 강을 건넜지만 아무 근심 없이 안방의 자리에서 앉고 눕는 것처럼 일상생활을 하는 것 같았다.

옛날 우임금이 강을 건너는데 황룡이 배를 등에 짊어져서 몹시 위험한 지경이었다. 그러나 삶과 죽음에 대한 판단이 먼저 마음속에서 뚜렷해지자 용이든 지렁이든 눈앞에서 크고 작은 것을 따질 게 없었다. 소리와 빛은 외물이다. 외물은 언제나 귀와 눈에 누가 되어 사람들로 하여금 바른 길을 잃어버리게 하는 것이 이와 같다. 하물며 사람이 세상을 살아갈 제 그 험난하고 위험하기가 강물보다 더 심하여 보고 듣는 것이 병통이 됨에 있어 서랴.”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님을 살면서 무수히 겪다보니 이제야 이 말이 이해되네.


나는 기억에 없는데 이게 국어교과서에 나온다네아이들에게 이 부분을 가르치며 연암이 참 뻥이 심하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대그런데 전체를 읽으니 이 부분에 대해 이해를 하겠다며 그 시절 아이들에게 제대로 설명을 해 주지 못한 것을 미안해하기도 했다.


이런 식의 사유는 여행 내내 계속된단다.

 

연암은 위선을 싫어하고 형식에 구애받지 않으며 새로운 문물에 개방적인 지식인이었다.

 

<일신수필>에 실린 일화로 사람들이 북경을 다녀온 사람들에게 가장 볼 만한 것이 무엇이었냐 물을 때 청 문명의 장관은 기와 조각과 똥 부스러기에 있다는 삼류선비의 대답은 본질을 꿰뚫는 놀라움이었다.

도무지 볼 것이 없다고 말하는 일류선비나 북벌론을 주창하는 이류선비의 오만과 허세, 속 좁음을 이보다 더 유쾌하게 야유할 수 있을까?


깨어진 기와조각도 버리지 않고 집의 담과 뜰을 아름답게 꾸미는데 사용하고 버려진 똥도 남김없이 거둬들여 알뜰히 사용하는 태도에서 청의 부요한 문명의 바탕을 보고 그런 그들의 실용정신을 배워야 한다는 뜻을 어떻게 이렇게 명쾌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그는 여행 내내 그는 크고 호화로운 것이 아니라 백성의 삶이 나아질 수 있도록 쓰임을 이롭게 하여 삶을 도탑게하는 문명의 핵심을 놓치지 않았다.


뭐 볼 것 있냐는 주변 사람들의 말에도 아랑곳없이 사람들의 집짓는 방식, 기와를 얹는 방식, 술집에서 술을 되는 방식까지 그 이치와 원리를 세밀히 살펴 자세히 기록한 것은 선진 기술을 이용해 우리 백성들의 살림살이가 나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 유명한 이용과 후생, 정덕의 트라이앵글!


! 이렇게 한 뒤에야 비로소 이용이라 말할 수 있으리라. 이용이 있은 뒤에야 후생이 될 것이요, 후생이 된 뒤에야 정덕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그 쓰임을 이롭게(이용)할 수 없는데도 삶을 도탑게(후생)할 수 있는 건 세상에 드물다. 그리고 생활이 넉넉지 못하면 어찌 덕을 바르게(정덕)할 수 있겠느냐?’

 

평생 글을 읽는 사대부들이 그저 입으로만 외울 뿐 구체적인 연구가 없음을 개탄하는데 나 역시 지식인의 사명에 대해 생각해 본다.

 

공부는 왜 하는가?

공부는 남 주기 위해 하는 것이라던 말에 공감한다.


한 친구는 지금도 여전히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공부를 자식에게 강요하는 부모들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했고 어떤 친구는 윤여정의 말을 인용해 최선이 아닌 최중을 받아들여 지나치게 경쟁하는 분위기가 변해야 한다는 말도 했다.


연암처럼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유연성을 가지려면 자신의 고정관념부터 깨야한다는 생각까지 우리 친구들은 이미 열린 마음의 소유자들이다.


만주벌판을 지나며 연암이 멋진 울음터로구나. 크게 한번 울어 볼 만하도다!’라고 말한 <호곡장>편도 개인적으로 참 좋았다.

 

사람들이 인간 칠정 중에 오직 슬플 때만 우는 줄 알뿐 칠정 모두에서 울 수 있다는 것은 모른다는 설명이 좋았다고 말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우린 기뻐도 눈물이 나고  화가 나거나 억울해도 눈물이 나니까.

 

어린아이가 태어나며 터뜨리는 첫 울음을 엄마 뱃속 좁은 곳에 웅크리고 있다가 툭 트인 넓은 세상에 나오니 어찌 울음인들 터지지 않겠느냐며 조선이라는 좁고 갇힌 우물 속에 살던 자신이 청이라는 거대한 대륙을 눈으로 마주하며 느끼는 전율을 이렇게 빗대어 표현한다는 것이 놀라웠다.

 

열하일기 곳곳에 주옥같은 글들을 다 열거하기엔 글이 너무 길어진다.

혹 연암일기를 아직 읽어보지 못했다는 친구에겐 환희기(중국 요술 관람기인데 요술 자체도 신기하지만 그의 깨달음도 무릎을 탁 치게 하지), 옥갑야화(허생전도 여기 실렸어), 상기(코끼리에 대한 이야기)편도 읽어 볼 것을 권한다.

 

이 외에도 우린 연암의 유머와 사람을 좋아하는 성품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고 다산과 연암을 비교하여 생각해 보기도 했다.

 

한 친구는 젊은 날 이 책을 읽었더라면 연암의 장난기를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라 했는데 웃음과 얼버무림이야말로 연암이 위태로운 세상에서 자신을 지키며 살아가는 방법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끝으로 친구들이 마음에 남는 문장이라며 꼽은 글도 참 좋았다.

 (글 속에서 읽어야 이 뜻이 더 잘 새겨지는데...)

애쓰지 않아도 똑같아진다

안된 게 잘 된거야.’

인생은 길섶마다 행운을 숨겨둔다’ 

 

5엔 예고한 대로 신경숙의 아버지에게 갔었어로 독서 나눔하려 해.

 

그리고 6엔 우리 윗 선배 11강명희 언니가 쓴 <65>(도화 출판사)로 독서모임.

 

이 책은 올 초 나온 따끈따끈한 신상이라 도서관에 미리 주문하렴.

독서모임엔 참석하지 못해도 친구들이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을 많이 해 온 도서관에 다 이 책이 비치되면 좋겠다.

우리 선배이자 인천의 작가인데 우리가 알려야지.

무엇보다 글이 재밌고 문체도 깔끔하게 잘 쓰셨어.

 

긴 글 읽어주어 고마워.

이제 끝내고 걸으려 나가야지.

어디를 둘러봐도 초록이 싱그러워 살아있음에, 걸을 수 있음에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