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층 큰언니

 

                                                              김 희 재

 

 

벨 소리에 나가보니 모르는 사람들이 문밖에 잔뜩 서 있었다.

처음 보는 부부와 아들 둘, 딸 하나가 정중히 인사했다.

우리 집 바로 위층에 산다며 돌아가며 자기소개를 했다.

아들은 둘 다 중학생이고 딸은 곧 초등학교에 들어갈 유치원 졸업반이란다.

 중학생들이 쑥스러워 죽겠다는 얼굴로 꾸벅 인사했다.

통통한 유치원생 아가씨도 몸을 배배 꼬며 어색하게 인사했다.

그런 모습이 귀여워 절로 웃음이 났다.

아이들을 조심은 시키겠지만 쿵쿵거리는 소음이 발생할 수도 있을 테니 양해해 달라며

부부가 조심스레 파운드 케이크 상자를 건넸다.

온 가족이 모두 아래층 사람들에게 얼굴 익히러 온 것만도 고마운데 선물까지 들고 왔다.

새로 입주한 아파트라 너나없이 다 낯선데 이렇게 찾아와 주니 정말 기뻤다.


남자들은 인사만 하고 서둘러 자기 집으로 올라가고,

마침 나 혼자 있으니 꼬마 아가씨랑 엄마는 잠깐 들어와 집구경이나 하고 가라고 붙들었다.

거실에 걸린 가족사진을 보여주며 우리 식구 소개를 했고,

서로 전화번호도 주고받았다.

나는 그녀의 이름을 물어 ‘1300라고 저장했다.

나이가 몇이냐고 묻지는 않았지만, 아이들로 미루어 40대 중반쯤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맞벌이라 늘 바쁘다고 했다.

나는 아들 둘이 다 결혼해서 손주가 넷이고,

이 집에선 늙어가는 부부 둘이서 살고 있다고 답했다.

혹시 꼬마 아가씨를 집에 혼자 둘 일이 생기면 우리 집으로 내려보내도 된다는 말도 했다.

그건 동갑내기 손녀를 둔 할머니의 진심이었다.


아파트에 살면서 이런 사람들을 이웃으로 만난다는 것은 정말 큰 행운이다.

쿵쿵거리는 아이들 발소리가 아니라 천둥 치는 소리가 난다고 해도 괜찮다고 해야 할 판인데,

그동안 우리 천장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안면만 겨우 트고 서로 왕래 한번 제대로 못 했을 때 코로나19 사태가 터졌다.

너나없이 막연한 두려움에 떨며 서로 멀찌감치 떨어져서 불안한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이웃집 문을 두드리기는 힘든 상황이 계속 이어졌다.

몇 년 만에 유치원을 졸업하고 초등학생이 되길 손꼽아 기다렸던 꼬마 아가씨는 끝내 입학식도 못 했다.

꼼짝없이 온종일 집에 갇혀 지내야 했다.

가끔 엘리베이터에서 중학생 아들과 마주치면 진심으로 반가웠다.

내가 먼저 아는체하며 말을 붙이면 녀석은 어색해하면서 단답형으로 대답했다.

그게 사춘기 소년으로서는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 흐뭇했다.

미국에 있는 맏손녀 나경이랑 동갑인 여덟 살 꼬마 아가씨는 괜히 더 친하게 느껴졌다.

어쩌다가 산책길에서라도 보게 되면 냅다 뛰어와서

마스크로 안 가린 눈에다 웃음을 가득 담고 반갑게 인사했다.

나도 모르게 아유 이쁜 내 새끼소리가 절로 튀어나오려고 했다.

자꾸 나경이와 오버 랩 되었다.


어느 날, 밖에 나갔다가 오니 우리 집 현관문에 커다란 검정 비닐봉지가 매달려 있었다.

봉지 속엔 이름 모를 산나물과 제멋대로 생긴 가지 다섯 개, 풋고추 두어 줌,

살짝 꼬부라진 오이 몇 개가 들어있었다.

척 봐도 시장에서 파는 물건은 아니고 집에서 길러 식구들이 먹는 것이었다.

봉지 속엔 메모도 들어있었다.

친정엄마가 산에서 뜯은 나물을 많이 보내셨기에 조금 나눕니다.

더 드시고 싶으면 말씀하셔요.

두 분만 사시는데 너무 많이 드리면 부담스러우실까 봐 아주 조금만 담았거든요.”

순간, 삭막하던 내 마음에 물기가 돌았다.

젊은 사람이 어떻게 늙은이랑 나눌 생각을 했을까.



지금은 한국어 명사로 굳어진 아파트라는 말은 원래 분리하다라는 뜻을 지닌 라틴어에서 유래한 영어 단어(Apartment Building)를 우리 식으로 변형한 것이다.

아파트는 처음 만들 때부터 타인의 간섭에서 벗어나 확실하게 개인의 자유를 확보할 수 있는 기능을 많이 부여한 독립적 공간이었다.

그래서인지 여러 집이 켜켜이 포개어져 있는 구조지만 사람들은 철저히 분리되어 산다.

더욱이 요즘처럼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외면하는 게 미덕이 된 세상에서 아파트 사람들이 서로 소통하며 가까이 지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아래 위층은 까딱하면 층간소음, 누수 등으로 각박하게 다투는 사이가 되기 쉬운데 심덕이 좋은 그녀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덕분에 우린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나누는 이웃,

위급 상황이 닥쳤을 때 서슴없이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사촌이 되었다.


시골에 사신다는 그녀의 친정 엄니가 때때로 보내주는 푸성귀와 과일즙 등은 나도 가끔 맛보았다.

나도 무엇이든 넉넉하게 생기면 갖다 주게 되었다.

좁은 냉장고에 보관하느라 애쓸 필요가 없어서 좋고,

음식물 쓰레기를 안 만들게 되니 더 좋았다.

비 오는 날 별식을 만들어도 비 맞을 염려 없이 따뜻할 때 얼른 갖다 줄 수 있어서 편했다.

먹을 거 해 놓았으니 오너라 가거라 하지 않고 쉽게 나눌 수 있었다.

이래서 먼 사촌보다 가까운 이웃이 낫다는 속담이 생긴 모양이다.


지금은 벨을 눌러서 아무도 없으면 문 앞에 두고 메모지 대신 문자로 알린다.

잘 먹겠다는 감사 인사도 문자로 전하고, 좋은 글이나 꿀 정보가 있으면 보내주는 사이가 되었다.

그렇다고 자주 만나는 건 아니다.

그저 잘 있겠거니 하며 자기에게 주어진 일상을 열심히 살면서 든든히 여길 뿐이다.


얼마 전,

마침 여행 중인데 그녀에게서 문자가 왔다.

안녕하세요? 13층이에요.

좀 더 친하게 지내고 싶어서 호칭을 언니 또는 이모 등등 소심하게 생각해 보고 있습니다.

친정엄마가 나물을 보내주셨는데 너무 많아서 들고 내려갔다가

안 계신 것 같아서 문고리에 걸어 두고 왔어요.

혹시 오늘 여행 가신 건 아니시죠?”

여행 왔어요. 금요일에 돌아갈 겁니다.”

아하 그렇군요. 거둬들여야겠네요.

신문지에 싸서 잘 둘 테니까 건강하게 잘 다녀오셔요.”

고마워요.

그런데 말이에요.

나는 그냥 나이 많은 큰언니 하고프다.”

하하. 워낙 젊게 생각하셔서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나이보다 생각이 우선이지요.”

이렇게 나는 염치 불고하고 아래층 큰언니가 되었다.

나경이와 꼬마 아가씨를 같이 만나게 되면 촌수가 좀 복잡하겠지만 그건 나중 일이다.

그날 나는 온종일 혼자 벙싯거렸다.

 

 

 

 

 

 

* 김희재; 계간수필 천료 (1998).

              한국문협, 국제PEN한국본부. 수필문우회, 계수회, 한국수필 회원

              저서; 산문집 <죽변 기행>, 러시아와 북유럽여행기 <끝난 게 아니다>,

                 4인수필집 <이상한 곳에서 행복을 만나다> 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