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독서 나눔

전쟁 같은 맛은 어떤 맛일까?

 

12월 친구들과 함께 읽은 책은 그레이스 조가 자신의 어머니 군자를 회상하며 쓴 실화 에세이 전쟁 같은 맛이다.

 

한 친구가 말했다. ‘나는 그 맛을 알 것 같아

십여 년 전 병원에 입원했을 때, 식욕을 잃어 어떤 음식도 먹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약을 먹기 위해, 기운을 차리기 위해, 억지로 삼켜야 했었던, 그 맛이 전쟁 같은 맛을 연상시켰다.

(군자씨에게 전쟁 같은 맛은 미국이 구호 물자로 준 분유 맛)

 

군자씨는 1942년생으로 오사카에서 태어났으며, 해방 후 고향으로 돌아와 한국전쟁을 겪었고, 스무 살이 채 되기도 전에 아버지와 오빠, 언니 등 가족의 절반을 잃었다. 가난하고 고달팠던 시절, 젊고 아름다웠던 그녀는 기지촌에서 일했고 미혼모로 혼혈아를 낳았다.

 

어릴 때 살던 동네 근처에 기지촌이 있었다던 한 친구는 이 책을 읽으며 그때 기억을 많이 떠올렸다.

그때 우린 너무 어려 그 사람들의 사연과 애환을 알지 못했다.

소위 튀기라 놀림 받던 애들이 많았고, 대부분이 나중에 아버지 나라로 돌아갔다.

당시엔 America dream에 대한 동경이 있어, 미국으로 간 것을 잘된 일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며 그들이 미국에서 인종차별을 당하며 고생하는 것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

 

같은 혼혈인이라도 백인 혼혈보다 흑인 혼혈이 더 차별 받고 괴롭힘을 당했다.

친구는 4학년 때 같은 반에 있던 흑인 혼혈 여학생을 떠올렸다.

남자애들이 그 애를 많이 괴롭혔다. 어린 마음에도 옳지 않은 행동이라 생각해 여자애를 감싸 주웠는데 그 여자애도 미국으로 갔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혼혈인을 전혀 본 적이 없었던 한 친구는 중학교 때 같은 반이 된 백인 혼혈 친구를 보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그 애도 중1 때 아버지 나라로 돌아갔다.

 

꽤 많은 수의 혼혈인이 아버지의 나라로 돌아갈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나의 순진한 생각이었다.

많은 혼혈인이 미국으로 갈 수 있었던 것은 결코 호의가 아니었다.

단일 민족, 단일 국가에 자부심을 느끼는 정치 지도자에게 양 공주와 혼혈 아기는 사회적 위기로 인식되었다.

혼혈인에 대한 해외 입양은 달갑지 않은 인구를 제거할 수 있는 정부 정책이었다.

사회복지사들은 기지촌에서 일하는 여성들에게 한국이 그들의 자녀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아버지 나라야말로 아이들이 가야 할 곳이라고 설득하는 공격적인 캠페인을 벌였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아들을 포기하지 않고 키우기 위해 군자씨는 22살이나 나이 많은 미군을 만나 그레이스를 낳고 아이들을 위해 미국행을 단행한다.

 

그런 군자씨에게 쉽게 살려고 외국인에게 몸을 판 나쁜 여자라고 비난할 수 있을까?

기지촌 대신 왜 공장에서 일할 생각을 하지 않았느냐고 묻는 것이 정당할까?

 

그레이스가 기억하는 엄마는 세 시기로 나뉘는데, 그중 어렸을 때 기억하는 엄마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가난으로 공부를 포기해야 했던 군자씨는 더 나은 삶을 꿈꾸며 아이들에게도 더 많은 기회를 주고 싶었다.

미국인보다 더 미국인이 되고 싶었던 군자씨.

그러나 불운하게도 그녀가 미국인 남편을 따라 정착한 그곳은 인구가 고작 5727명에 한국인은 오직 3명 뿐인 매우 보수적인 사회였다.

 

배움은 짧았어도 총명하고 활달하며 적극적인 그녀는 자연에서 채취한 블루베리와 야생 버섯으로 지역에 식재료를 공급하는 사업적 수완을 발휘하고, 동양에서 누군가 이민을 오면 적극적으로 그들의 정착을 돕고자 노력하고, 음식을 만들어 지역 주민들을 초대해 파티를 열기도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직접 만나보고도 엄마를 온전히 보지 못한 채 자기 상상에 뼈와 살을 붙인 허수아비로 보았다.’ 는 그레이스의 말대로 엄마는 사람들에게 받아 들여지지 못하고, 인종차별과 성폭행을 당했다.

편견과 오해는 힘이 쎄다.

 

그래서였을까?

군자씨는 자신만이 들을 수 있는 목소리를 따라 세상으로부터 스스로를 격리 시켜 가두어 버린다.

 

엄마에게 진 빚을 갚기 위해 엄마가 바라는 대로 공부를 하여 박사가 된 그레이스는 엄마를 더 알기 위하여 엄마의 삶을 연구하고자 사회학과 인류학을 전공한다.

 

군자씨는 비록 18년 간 조현병과 씨름하며 세상으로 향한 문을 닫고 신선한 공기도 햇살도 거부하며 살았지만, 효행심이 깊은 아들과 딸, 며느리를 두었으니 불행하기만 한 삶을 산 것은 아니라고 친구들은 말했다.

엄마를 끝까지 돌본 아들과 딸 덕에 군자씨는 시설이 아닌 아들 집에서 사생활을 보호 받으며 돌봄을 지속적으로 받을 수 있었으니 미국 사회에서는 드문 일이었다.

딸이 박사 학위를 받고 교수가 되었을 때 너무나 행복해 하던 군자씨는 천상 한국 엄마였다.

우리 교수님 왔어?’ 하며 그레이스를 맞이하는 군자씨를 보며 마음이 찡했다는 친구는 그녀는 딸을 통해 자신의 꿈을 이룬 것이라고 했다.

 

엄마의 삶을 시대적 상황과 사회 정치적 역학 관계에서 지성적이고 학문적으로 풀어간 딸에게 깊은 감명을 받았다는 친구도 있었다.

 

털어놓기 쉽지 않은 가족사를 진솔하고 밝히고 사회적 관점에서 재조명하여 무수한 군자씨의 삶의 존엄성을 되찾게 해주었다는 점도 의미가 크다.

 

한 친구는 하루 만에 이 책을 읽을 수 있었던 이유로 잘된 번역의 힘을 지적하였다. 사용한 어휘나 문장이 자연스러워 거슬림 없이 책을 읽을 수 있었고, 체험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라 감동이 컸다.

우리가 추상적으로 생각하는 역사 속에 구체적인 개인의 삶을 알게 되니 자신이 모르고 산 것이 너무 많다는 반성이 들었다.

이런 이야기들이 영화로도 많이 만들어져 역사 속에 개인들이 어떻게 영향 받고 살았는지 알려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친구는 1950년대와 60년대 한국에 살았던 실종된 친족이 있는 가족들은 마치 실종자가 죽은 것처럼 행동해야 했다는 문장에 아버지가 생각났다.

 

월남민인 아버지는 북에 사는 친족들의 생사를 늘 걱정하셨다.

세월이 많이 지난 후 아버지는 미국에 사는 이를 통해 북한에 있는 가족의 소식을 알게 되었다. 그들을 통해 소식과 돈을 전하려는 아버지에게 친족이 보낸 편지는 군인 신분인 아버지와 연락하는 것이 자신들의 생존을 위험하게 할 수 있으니, 연락하지 말라는 부탁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유품을 정리하는데 그 편지가 곱게 싸여있었다.

 

한국인의 정체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은 미각이다.

전에 읽은 <H마트에서 울다.>의 미셸처럼, 그레이스도 한국 음식을 만들며 엄마를 그리워하고 운다.

엄마를 위해 만들었던 고등어 조림, 생태 탕 이야기, 콩 국수 만들기 등등


엄마가 아직 건강하던 시절 한국에서 누군가 입양되었거나 이사를 오면 엄마는 김치를 만들어 선물하거나 그들을 집으로 초대하여 고향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친구들에겐 어떤 음식이 힘을 주고 기억에 남을까?

 

한 친구에겐 엄마가 만들어 준 수제비가 늘 생각나고 가장 먹고 싶은 음식이다.

멸치 다시 국물에 감자와 호박을 숭숭 썰어 끓였을 뿐인데도 엄마의 수제비는 늘 감칠맛이 났다.

 

할머니가 담근 동치미가 최고였다고 말한 친구가 있었다.

겨울에 얼음 언 동치미 한 사발의 맛을 잊을 수 없다.

지금은 엄마가 만들지만, 외할머니의 그 맛이 최고였다.

 

자신이 아플 때 엄마가 만들어 주던 흰 죽이 생각난다.

사실 흰 죽은 맛이 없는데, 왜 자신에게 흰 죽이 특별했을까?

그건 엄마가 오직 나 만을 위해 끓여주신 죽이라 특별했었다.

자녀가 많아 나 만을 위한 것이 힘들고, 자신은 맏이라 모든 것을 양보해야 했다.

(이 부분에서 친구들의 엄청난 질타가 쏟아짐.

맏이가 받는 대우가 얼마나 많은가?

옷을 물려받는 설움을 맏이들은 알까?)

엄마 돌아가신 후 비 오는 날이면 아버지가 부쳐주신 김치 부침개나 감자 부침개도 늘 그리운 음식이다.

 

가족이 빙 둘러앉아 빚던 만두가 생각난다.

만두 피를 만들 때 주전자 뚜껑을 사용했다.

김치를 많이 넣고 만든 고기만두가 최고다.

겨울에 언 김치를 국물 짜내 썰면 손이 얼마나 시리던지....

아버지가 황해도 분이라 만두를 좋아하셨다.

훗날 우리 손주들은 할머니 하면 식혜를 떠올릴거다.

손주들이 할머니가 만든 식혜가 최고로 맛있다고 한다.

 

생일 때면 엄마는 미역국도 끓이셨지만, 참기름을 발라 소금 간을 한 김을 아궁이 불에 구워주셨다. 그 김 맛이 생각난다.

 

음식은 맛으로 먹기도 하지만 추억으로 먹는다.

우리도 우리 아이들에게 추억이 될 음식 하나 쯤은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돌아보니 모든 것이 선물이며, 감사였다.

바닥짐이 있었기에 우리가 삶의 균형을 잃지 않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음을 알려준 친구에게 감사.

 

다음번 독서 모임은 2024년이라네

<자기 인생의 철학자들>을 추천해 준 신영에게도 감사!

130일 저녁 8총동 화상회의에서 보자.

 

새해에도 모두 건강하고 즐겁게 지내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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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숙희야, 고마워!
    이번엔 꼭 함께해야지! 했는데…
    이 책을 읽으며 참 많은 생각을 하게됐어.
    그중 한가지는숙희가 말한 것처럼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역사적 아픔들을 사회적 관점에서 재조명해 아직도 그 아픔에서 벗어나지 못한 분들의 삶을 존중하는 것이다. 
    요즘 ‘서울의 봄’이라는 영화가 많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다. 그 시대를 살았음에도 모르고 산 사건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하물며 함께하지 못한 
    역사적 사건들은 오죽할까.
    미래세대를 위해서라도 
    그리고 우리 민족의 자존심을 위해서라도
    많은 왜곡된 역사적 사실들을
    이제라도 바로 잡아야 하는 것 아닐까?
    이런 책이나 영화들이 나올 수 있도록
    관심과 성원의 마음을 잊지않으려 한다.
    이 책을 추천하고 함께 할 기회를 마련한 독서 모임 친구들 모두 고맙다!
    매번 숙희의 후기글로 책한권 읽고, 친구들과 대화에 참석한기분...
    이번에 읽은 책은 울림이 남달랐던 것 같다. 공감이 가는 세월을 살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어. 
    음식에 담긴 추억을 이야기하며 엄마를 그려보았다. 친구들 만나는 시간을 늘~ 기다린다.
    늘 그렇지만 책을 읽을 때보다도 독서 나눔을 하는 시간보다도 숙희의 정리를 읽게 되면 모든 것이 정리되고 완성되는 느낌이야. 숙희야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