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2월 독서 나눔


화상회의 목록 상태가 회의 중으로 바뀌며 반가운 친구들의 얼굴이 화면에 뜨기 시작한다.

오랜만에 건강해진 모습으로 등장한 친구가 있어 주고받는 안부가 더욱 뜨겁다.

 

2월에 우리가 함께 읽은 책은 패트릭 브링리가 쓴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이다.

 

나는 누군가를 잃었다. 거기서 더 앞으로 움직이고 싶지 않다.’

 

20086월 형이 세상을 떠나고 나자, 그는 그가 아는 가장 아름다운 장소에서 떠올릴 수 있는 가장 단순한 일을 하기로 한다.

 

이 책에서 패트릭은 미술관 경비원으로 일하며 관찰한 예술 작품에 대한 감상을 이야기하고, 우리가 알지 못했던 메트의 뒷이야기를 들려주며, 형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다시 세상으로 나갈 용기를 얻는 치유과정을 보여준다.

 

친구들이 지적하듯이 이 책은 빨리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다.

우리는 이 책에 언급된 미술 작품들을 Naver에 검색해 좋은 해설자의 안내를 받으며 감상하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다.

 

한 친구는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 중의 하나로 형이 죽고 난 몇 달 후 가족 모임에서 엄마와 함께 조용히 모임을 빠져나와 미술관을 찾았던 일을 떠올렸다.

 

때론 사람들의 말보다 그림이 더 누군가의 슬픔을 위로하고 그 마음을 표현해 줄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패트릭과 엄마는 각자 자기만의 슬프고 밝은 그림을 찾는데, 패트릭은 형이 두 손을 꼭 쥐고 고통을 참아내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경배라는 작품에 마음이 끌렸고, 엄마는 니콜로 디 피에트로 제리니가 그린 통곡, 피에타앞에서 울음을 터뜨렸다.

 

친구가 말했다.

동생이 떠나고 한동안은 바깥으로 나오는 일이 힘들었다.

누군가 동생 일을 물으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막막하고 부끄럽고 죄스러웠다.

슬픔은 슬픔으로 이겨내야 하는 것 같더라.

눈물을 억지로 참지 말고 울고 싶으면 울어야 한다.

감사의 기도가 큰 힘이 되었다.

남은 가족들이 잘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도 위안이 되었다.

 

어려서의 경험이 중요하다고 지적한 친구도 있었다.

미술사를 전공한 패트릭의 엄마가 자녀들을 자주 미술관으로 데려갔으며 각자가 좋아하는 그림들을 찾아보게 하던 일이 인상적이었다.

 

책을 읽는 내내 저자가 너무 부러웠다는 친구가 있었다.

어려서부터 문화적 소양을 키우는 환경에서 자라난 덕에 미술 작품을 바라보는 안목이 남다르다고 느꼈다. 작품 속 인물과 대화하고 화가의 시선으로 그림을 바라보는 저자의 상상력이 좋았다.

 

작품들을 지켜보는 일을 하는 나는 이 작품을 본래의 의도대로 바라볼 수 있다는 사실이 고맙다.

말하는 저자를 보며 그가 자유롭게 그림을 바라봐도 되는 입장이어서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만약 그가 미술 평론가나 큐레이터의 입장에서 그림을 설명해야 하는 것이었다면 그의 설명은 많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런 측면에서 그저 지켜보는 경비원의 신분은 그림을 있는 그대로 즐기기에 유리한 조건이 아니었을까?

 

2018년 메트를 나온 그가 현재는 뉴욕 도보 여행 가이드로 일한다고 하니 언젠가 뉴욕에 가면 꼭 그의 안내를 받고 싶다.

 

이집트 유물관에 경비를 서던 저자는 말한다.

 

책으로 읽는 것과 예술품을 직접 보는 경험이 얼마나 다른지.

책 속 정보는 이집트에 관한 지식을 진일보시켰지만, 이집트의 파편을 실제로 마주하는 것은 나를 멈추게 한다.

이것이 예술의 본질적인 특성이다.

 

여러 해째 미술사를 공부하고 있는 친구가 말했다.

나는 작품을 볼 때, 감상을 하는 것이 아니라 공부를 하는 것 같아.

그림을 전체로 보는 것이 아니라 지식으로 알고 있는 것을 파편적으로 이해할 뿐이야.

 

패트릭은 메트에서 오래 근무하며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자기만의 방식을 갖추게 되었다며 우리에게 조언한다.

 

첫 단계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한다. 그저 지켜봐야 한다.

판단하지 마라.

이상적으로 처음 1분 동안은 아무런 생각도 해서는 안 된다. 예술이 우리에게 힘을 발휘할 때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어떤 그림이 아름다운지 알고 싶다면 그림을 바라볼 때 우리 안에서 어떤 반응이 일어나는지 확인하면 된다.

 

메트에서 열린 기획전에 대한 이야기도 좋았다.

친구들은 미켈란젤로에 대해 새로운 면을 알 수 있었다고 했다.

 

그의 걸작들은 그의 천재적 영감을 받아 그린 그림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무한한 근면성의 산물이었음에 깊은 존경을 표한다.

 

고개를 90도 각도로 젖히고 팔을 12시 방향으로 뻗은 상태로 적어도 570일 이상을 그런 자세로 일을 하였을 그를 상상해 본다.

 

88살에 죽기 며칠 전까지도 말을 잘 듣지 않는 대리석을 망치와 끌로 두들기며 작품을 만들던 그는 기본에 충실한 장인이었다.

 

나는 <지스 밴드 퀼트 작품전>에 마음이 끌렸다.

영화 아메리칸 퀼트에서 보면 여러 사람들이 모여 천 조각을 잇대어 바느질하는 것이 퀼트라고 알았었는데, 그게 흑인 노예들의 삶과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이번에 알게 되었다.

 

미국 남부 앨라배마주 지스 밴드라는 곳에서의 흑인들의 삶, 백인에 의해 자행된 잔학 행위 등을 Naver에서 읽으며 그 끔찍함에 몸이 떨리던데, 저자는 그런 정치적인 이야기는 언급하지 않으며 퀼트의 예술성만을 지적한다.

낡은 옷가지에서 자투리로 잘라낸 천으로 만든 퀼트 이불은 오로지 실용적인 이유에서 만들어진 것임에도 형용할 수 없는 빛깔과 문양으로 아름다움을 창조한다. (Naver에서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인간은 어떠한 처지에서도, 남루한 삶을 살아가면서도 아름다움을 지향하는 본능을 지녔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저자는 가장 위대한 예술 작품은 자신의 상황에 갇힌 사람들이 아름답고 유용하고 진실된 무언가를 창조하기 위해 조각조각 노력을 이어 붙여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교훈을 얻었다고 한다.

 

메트를 떠나며 어린 시절 미술관에서 엄마가 각자 제일 마음에 드는 작품 하나씩을 고르기 전에는 전시실을 떠나지 못하게 했던 것처럼 자신에게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을 고르는 작업을 한다.

<쿠로스 대리석 조각상> <은카시 주술상> <시모네티 양탄자> <곡물 수확>...

그가 최종적으로 고른 작품은

프라 안젤리코의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이다.


그림의 이 마지막 부분이 내가 따르고 싶은 모범이다.

내 앞에 펼쳐진 삶에서 나를 필요로 하고, 내가 필요한 경우들이 있을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다른 이들도 나를 위해 그렇게 해 줄 것이라는게 나의 희망이다.

 

이제 형은 세상에 없다.

나는 그 상실을 느낀다.

형은 그림에서 성모를 돌보기 위해 정신을 바짝 차린 채 몸을 굽히고 있는, 칭찬받아 마땅한 현실적인 사람들 중 하나일 것이다.

 

이 책은 미술에 관심이 많고 특히 미술을 어떻게 감상해야 하는지 알고 싶은 사람, 메트로 폴리탄 미술관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 읽으면 참 좋을 것 같아.

 

좋은 책을 추천해 준 옥규 덕분에 작품을 인터넷에서 찾아가며 설명을 들으니 참 좋았다.

 

맨 뒤편에 실린 메트로폴리탄을 찾는 이들에게 주는 조언도 눈여겨 읽을만 해.

 

3월엔 영양 있는 독서를 위해 모든 장르를 골고루 섭취한다는 의미에서 과학 도서를 골라보았다.

 

정재승이 쓴 <열두 발자국>이란 책인데, 다들 바빠 책 읽을 시간이 부족하거든 열두 걸음 중 내키는 몇 걸음만 읽어도 좋아.

 

326일 저녁 8 인일 화상회의에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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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독서모임에  참석해 정말 좋은 시간이었다.  늘 곁에서 응원해 주는  친구들이 있다는게  엄청 힘이된다
    대단한 후기를 읽으며 참 감동이다
    숙희한테 또 감탄!
    어쨌든 공부도 많이 한 독서였나부다
    항상 응원해요